전설적인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스토리

기사입력 : 2019-09-09 10:30:19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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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 로더(Estée Lauder)는 아마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화장품이 아닐까요. ‘갈색병’부터 ‘더블웨어 파운데이션’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스테디셀러를 보유하고 있는 브랜드죠.
 

▲사진 = 에스티 로더 제품들 ©Estée Lauder

현재 에스티 로더 그룹은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 중 하나입니다. 연매출 18조 원에, 에스티 로더, 바비 브라운, 맥, 크리니크, 조말론 런던, 아베다, 라메르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브랜드들을 서른 개 가까이 가지고 있죠.

이 모든 것은 바로 1946년 탄생한 작은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업주 에스티 로더의 이야기

▲사진 = 에스티 로더 ©Estée Lauder

 

에스티 로더는 이런 말을 했죠. ‘나는 한 번도 성공을 꿈꾸지 않았다. 그저 성공을 위해 일했을 뿐.’ 그녀는 이 말에 완벽히 부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기회를 포착하면 그걸 절대 놓치지 않고 그녀의 것으로 만들었죠. 남들은 대충 흘려버릴만한 사소한 기회였다고 해도 말이에요.

1908년 미국 뉴욕에서 동유럽 출신 유대인 부모님 슬하에서 태어난 그녀는, 16살 때 화학자 외삼촌과 함께 살게 되면서 화장품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녀의 열정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는데, 1930년 결혼해 주부가 된 뒤에도 화장품을 만들어 쓸 정도였죠.

 

▲사진 = 에스티와 남편 조셉 로더. 결혼식에서 에스티는 생애 처음으로 립스틱을 발랐어요. ©Estée Lauder

에스티는 결혼하고 한 달에 한번씩 ‘애시 블론드(House of Ash Blondes)’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그 곳의 헤어 디자이너가 별 생각 없이 에스티의 피부가 너무 좋다고 칭찬을 했는데요, 그녀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본인이 직접 만든 화장품을 가져오겠다고 이야기했죠. 그리고 실제로 가져왔고요.

처음에 헤어 디자이너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에스티가 화장품을 진짜 가져올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에스티는 제품을 보여주는 데 몇 분도 안 걸린다고 끈질기게 설득했고, 마침내 그녀의 제품을 헤어 디자이너에게 직접 발라줬죠.

▲사진 = 에스티는 1940년 외삼촌의 도움으로 이 4개의 제품을 만들었다고 해요. ©Estée Lauder

헤어 디자이너는 너무 만족한 나머지 자신이 새로 오픈할 미용실 한쪽에서 화장품 코너를 운영해보라고 에스티에게 제안했어요. 에스티는 그 때부터 자신의 이름 ‘에스티 로더’를 새긴 화장품을 미용실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단골손님은 계속해서 늘어 직원을 채용할 정도가 되었는데, 그녀의 세일즈 스킬 덕택이 컸어요. 에스티는 손님들이 드라이기 밑에서 대기할 때 크림을 발라 피부관리를 해주고 샘플을 나눠줬죠.

그러다 에스티는 뉴욕 최고의 부촌 롱아일랜드로 날아가 일류 호텔에 묵으며 주민들의 얼굴에 크림을 발라주며 제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는데요. 이것 역시 에스티가 기회를 그녀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했던 노력이었어요. 롱아일랜드에서 에스티의 화장품을 소개받고자 찾아온 손님이 있었는데요. 그 손님이 화장품에 만족하게 되면서 롱아일랜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에스티 로더에 대한 소문이 났던 거죠. 에스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많은 단골을 만들고자 롱아일랜드로 날아간 거였고요.

▲사진 = 롱아일랜드에서 가장 비싼 집들 중 하나. 집이라기보다는 성 같죠 ©Nimvo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1944년이 되자 에스티는 하루에 50명의 얼굴을 만질 정도로 수많은 손님을 맞이했어요. 하지만 그걸론 부족했죠. 당시에는 백화점 등 소수의 판매처에서만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했는데, 에스티 로더 제품은 백화점에 없다 보니 현금 결제만 받았거든요. 에스티는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구매 결정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백화점 입점을 추진했죠.

하지만 당시 백화점 화장품 매장은 쉽게 입점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바이어들은 신생 브랜드인 에스티 로더에 관심이 없었고요. 여기서 그녀는 또다른 기지를 발휘해요. 1946년 뉴욕의 한 고급호텔의 자선행사에서 그녀의 립스틱 80개를 무료로 나눠준 거예요. 그것도 금속 소재 케이스에 담긴 립스틱을 말이죠. 당시엔 전쟁 직후라 금속이 굉장히 귀했거든요.

그 행사 이후 사람들은 호텔 근처의 고급 백화점 ‘삭스 피프스 애비뉴(Saks Fifth Avenue)’에 몰려가 에스티의 립스틱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에스티 로더는 그곳에 입점해 이틀만에 모든 물량을 판매해버렸죠. 브랜드 에스티 로더는 바로 이 시점에 공식적으로 태어났어요. 다시 말해, 1946년 법인 ‘에스티 로더’가 출범했던 거예요.

▲사진 = 인산인해였던 에스티 로더 매장 ©Estée Lauder



에스티 로더의 수많은 혁명적 시도들

에스티 로더에서 했던 시도 중에는 화장품 업계에서 역사적이라고 평가되는 것들이 많아요. 그 중 가장 성공적이고 독창적이었던 시도는 바로 ‘유스듀(Youth Dew)’라는 제품과 관련되어 있는데요.

▲사진 = 아직도 판매되고 있는 유스듀 배스오일 ©Estée Lauder

유스듀는 배스오일 겸 향수로, 1953년 출시된 제품이에요. 출시된 첫 해 5만 병 이상 팔리면서 5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하며 에스티 로더를 도약하게 만들었고요.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 자장면 한 그릇이 15원이었으니, 지금 기준으로 얼마나 큰 매출이었을까요.

유스듀는 여러가지로 혁명적이었는데, 가장 대단한 점은 향수를 소비하는 문화를 아예 바꿔버렸다는 거예요.

당시 미국에서는 향수에 대해 지극히 소극적이고 보수적이었어요. 향수를 너무 성적인 의미로만 해석했달까요. 향수는 연인이 선물해줘야만 쓸 수 있는 물건이었죠. 특별한 날도 아니고, 애인도 없는데 향수를 뿌리면 퇴폐적이라는 인식마저 있었어요. 그래서 미국 여성들의 화장대에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오래된 향수병이 자리했고, 미국 여성들은 너무 오래되어 거의 증발되어버린 향수를 뿌리곤 했죠.

에스티 로더에서는 이걸 바꿔 보기로 결심했어요. 먼저 에스티 로더에서는 ‘향수’를 사게 하는 건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걸 인지했죠. 그래서 향수라는 말 대신 ‘배스오일’로 유스듀를 명명했습니다. 목욕을 위해 배스오일을 사는 건 미국 여성들에게 자연스러웠으니까요. 그러면서도 향수로 겸용할 수 있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고요.

▲사진 = 유스듀 광고 ©Estée Lauder

하지만 정말 향수로 쓸 수 있으려면, 배스오일로 쓰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향기가 지속되어야겠죠. 이를 위해 에스티 로더에서는 끊임없는 연구를 했고, 마침내 향수 분자가 피부에 닿았을 때 향기가 바로 퍼지지 않고 서서히 발산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덕분에 유스듀의 향기는 12시간 이상 지속되었어요.

유스듀의 판매 방식도 독창적이었는데요. 당시 유명한 프랑스 향수들은 백화점에서 뚜껑을 개봉해놓지 않고 판매를 했습니다. 즉, 향수를 시향해보고 살 수가 없었던 거죠. 에스티 로더에서는 손님들이 유스듀를 손에 발라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손님들은 손에 하루종일 남아있는 유스듀의 향기에 반해, 결국 제품을 사러 돌아왔고요.

에스티 로더에서는 프랑스 유명 백화점에 입점할 때에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취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갤러리 라파예트(Galeries Lafayette)’ 백화점에서는 미국 브랜드는 받아줄 수 없다며 에스티 로더의 입점을 거절했죠.

▲사진 =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고급 백화점의 대명사죠. ©Viator

그러나 얼마 후 에스티 로더는 당당하게 라파예트에 입점했는데요. 창업주 에스티 로더가 ‘우연히’ 유스듀를 바닥에 떨어뜨린 덕분이죠. 병이 깨지면서 백화점 바닥에 유스듀의 향기가 배었는데, 향기를 맡은 손님들이 향수를 사고 싶다는 문의를 끊임없이 했거든요.

또한 에스티 로더는 정말 길게 보고 브랜드를 운영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데요. 그 중 하나는 ‘매출 목표’에 관한 원칙입니다. 에스티 로더에서는 일별 매출 목표가 있었는데, 그 목표를 너무 자주 초과달성한 직원을 불러 혼내곤 했다고 합니다. 다른 회사 같으면 매출을 많이 냈으니 칭찬을 했을텐데 말이죠. 손님이 물건을 과도하게 많이 사서, 나중에 에스티 로더 제품을 ‘괜히 샀다’라는 느낌을 받을까봐 그랬다고 해요.

또 에스티 로더는 사은품과 샘플을 도입한 최초의 브랜드인데요. 크림을 발라본 고객들이 효과에 만족하면서도 가격 때문에 쉽게 구매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걸 발견하자,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립스틱이나 향수를 산 고객에게 크림 샘플을 증정하기 시작한 것이죠. 당시 경쟁사들은 에스티 로더가 모든 걸 공짜로 줘버리고 있기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에스티 로더의 완벽한 승리였죠. 현재 거의 모든 브랜드에서 사은품과 샘플 증정을 하고 있으니까요.

▲사진 = 에스티 로더 제품들 ©Estée Lauder


에스티 로더의 현재, 그리고 ‘갈색병’


창업주 에스티 로더는 1973년 은퇴 시기가 되자 두 아들에게 본격적으로 회사 경영을 맡기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을 계속했죠. 남편이 작고한 후 한동안 일을 쉰 것 외에는, 그녀는 2004년 타계할 때까지 일에 전념했다고 해요. 현재 에스티 로더는 로더 가족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고요.

▲사진 = 로더 가족들 ©Estée Lauder

에스티 로더에서 가장 유명한 상품은 ‘갈색병’이라는 애칭을 가진 세럼인데요. 1982년 출시 후 현재 1분에 9병씩 팔리는 전설의 제품이죠.

▲사진 = 에스티 로더 ‘갈색병'(우), 유사한 성분의 아이크림(좌) ©Estée Lauder

갈색병이 출시되었을 때는 스킨케어 제품에 단순히 보습 기능만 있을 때였는데, 에스티 로더에서는 밤새 피부 손상과 노화를 개선해주는 갈색병을 통해 스킨 ‘케어’를 스킨 ‘리페어’로 진화시켰어요. 밤이 피부 개선에 중요한 시간이라는 소개를 하며 ‘뷰티 슬립(Beauty Sleep)’이라는 개념도 제시했고요.

갈색병에 쓰인 히알루론산은 1982년에는 의료용으로만 사용되던 제품이었습니다. 때문에 갈색병은 아직도 의약품같은 느낌이 있죠. 빛으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기 위해 약국에서 쓰는 갈색병을 제품 패키지에 도입했고, 실험실 제품처럼 스포이트를 통해 사용하게 만들었거든요.

▲사진 = 에스티로더 ‘갈색병’ ©Estée Lauder

또, 요즘은 히알루론산이 흔한 성분이지만, 출시 당시에는 금보다 비쌌다고 해요. 그렇게 값비싼 성분을 화장품에 도입하고,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현재는 6세대까지 진화한 에스티 로더의 갈색병, ‘어드밴스드 나이트 리페어’.

이미 써보신 분들이 많겠지만, 혹시 아니시라면 한 번 사용해보시길 권해 드려요. 에스티 로더의 혁신성과 집념의 정수 같은 제품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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