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다(Aveda) 브랜드 스토리

기사입력 : 2019-08-12 09:09:32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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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럭셔리, 헤어 케어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아베다를 수식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죠. 비싸서 망설이게 되지만 써보고 나면 다시 찾게 되는 제품이 많은 곳.

이러한 성공적인 아베다의 모습 뒤에는, 아베다와 창업주 호스트 레켈바커가 거쳐왔던 역경과 그를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사진 = 베스트셀러 데미지 레미디 헤어 리페어 ©Aveda

 


창업주 호스트 레켈바커의 이야기


아베다의 창업주 호스트 레켈바커(Horst Rechelbacher)는 위기를 기회로, 불운을 행운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전화위복의 아이콘이랄까요.
 

▲사진 = 호스트 레켈바커 ©Professional Beauty

첫 번째 전화위복의 계기는 중학교 중퇴였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한 덕에 10대에 이미 자기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죠.

호스트는 1941년 나치가 점령했던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탓에 그는 14살 때부터 미용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죠(물론 학교 가는 걸 워낙 싫어하기도 했지만요).

최선을 다한 건 당연했을 테고, 거기에 더해 호스트에게는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죠. 그는 불과 17살 때 로마와 런던으로 건너가 최고의 미용실에서 세계적인 셀러브리티의 헤어 스타일링을 했습니다. 유럽 헤어 스타일링 챔피언쉽도 우승했고요.

그러다 호스트는 두 번째 불운을 통해 더 큰 성장을 하게 되는데요.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하느라 빚더미에 올라앉고,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인 사업가로 거듭났던 겁니다.

24살 때 호스트는 미국 헤어 스타일링 전시를 위해 미국 전역을 2년여간 투어하고 있었는데요.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한 음주운전자가 갑자기 호스트의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사진 = 1963년 미국 투어 중이었던 22살의 호스트 레켈바커 ©Beautylish

 

중상을 입은 호스트는 미국 병원에 6달간 입원했어요. 미국 병원비는 1960년대에도 엄청났기에 호스트는 많은 빚을 떠 앉게 되었죠.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미니애폴리스의 유명한 미용실에 취직해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출중한 실력 덕에 단골 고객은 빠르게 늘어났고요.

그렇게 생긴 단골 고객 중 한 명이 호스트에게 4,000달러를 대여해 주면서, 호스트는 본인의 미용실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추가 출점을 거듭하며 호스트는 20대에 성공한 사업가로 자리매김했죠.

미니애폴리스 출신 여성과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기도 했어요. 물론 후에 이혼하고 재혼했지만 말이에요.

 

▲사진 = 아내 키란 스토달렌(좌), 호스트 레켈바커(중), 딸 니콜 레켈바커(우) ©Heritage Radio Network

36살일 때 호스트는 위기를 또 한 번 기회로 바꿨는데요. 바로 직원 문제였습니다.

호스트의 미용실에서 트레이닝을 받은 미용사들은 독립해서 호스트의 경쟁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 아예 미용 학교를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렇게 1977년 시작된 호스트 에듀케이션 센터(Horst Education Center)에는 점차 사람이 몰렸죠. 1986년에는 9개월짜리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받으려는 학생 수가 200명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당시 물가에 비해 많이 비싼 500만 원이라는 수강료를 받았는데도 말이에요.

▲사진 = 호스트 에듀케이션 센터는 후에 아베다 인스티튜트(Aveda Institute)로 이름이 변경되었죠. ©Mark Reilly

 

1986년 기준으로 호스트의 미용실과 학교에서 나오는 연매출이 50억 원이 넘었으니, 호스트는 또 한 번 위기를 엄청난 기회로 바꿔버린 셈입니다.

호스트가 아베다를 창업한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만성피로에 시달리던 호스트가 이를 해결하려는 과정 중에 자연스레 생겨난 브랜드이기 때문이죠.


아베다, 론칭부터 성공하기까지

 

▲사진 = 아베다 제품들 ©Aveda

 

호스트는 아베다를 1978년 론칭했습니다. 하지만 아베다의 진짜 시작은 1970년대부터였습니다.

14살 때부터 계속 일해왔고,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도 더 열심히 끊임없이 일하던 호스트는 만성적으로 피곤했고 불행하다고 느끼곤 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초학자(herbalist)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명상과 동양 철학에 관심을 꾸준히 가졌는데요.

하루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스와미 라마(Swami Rama) 강연을 듣고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인도에서 6개월 간 지내게 되었죠. 인도에서 그가 심취했던 건 아유르베다(Ayurveda)라는 고대 인도의 전통의학이었습니다. 

 

▲사진 = 스와미 라마 ©Himalayan Institute

아유르베다(Ayurveda)는 삶(Ayur)과 앎(Veda)의 합성어인데, 삶의 지식, 생명 의학 같은 의미를 지니죠. 아유르베다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균형’입니다.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혹은 영적인 기운의 상호 균형이 깨졌을 때, 혹은 개인과 자연환경의 균형이 깨졌을 때 질병이 생긴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유르베다는 자연과 결합되는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려 합니다. 건강한 식생활, 꾸준한 운동, 정신 수련 등이 그 사례죠.

호스트는 아유르베다의 원칙에 따라 건강을 가꿔나갔습니다. 인도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까지 받으면서 전문성도 쌓았고 인맥도 만들었죠.

그리고 드디어 1978년, 호스트는 아유르베다 콘셉트의 브랜드 아베다(Aveda)를 론칭했습니다. 그리고 아유르베다 의사 두 명과 함께 주방에서 만든 첫 상품 클로브 샴푸(clove shampoo)를 선보였어요.

▲사진 = 정향이 담긴 클로브 샴푸 ©Beautylish

사실 아베다 제품에 대한 시장의 첫 반응은 좋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빴죠.

당시에는 쾅쾅 울리는 듯한 음악과 진한 연기, 파란 불빛이 가득하지 않으면 헤어 쇼가 아니었거든요. 화학 성분으로 만든 제품들이 인기가 많았고요. 아베다가 내세우던 천연과 균형, 아로마테라피와 같은 가치는 시대를 너무 앞섰던 거죠.

아베다의 클로브 샴푸를 본 사람들의 첫 반응은 ‘우웩(Yuck)!’이었어요. 향기롭기보다는 톡 쏘는 냄새가 났던 데다가 색상도 어두침침한 갈색빛이었거든요. 주문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하루는 미용실에서 한 금발 손님의 머리를 감길 때 클로브 샴푸를 쓰려고 하는데, 손님은 기겁하면서 쓰지 말라고 했어요. 호스트는 여기에 착안해 갈색 모발을 가진 손님들에게 ‘갈색 모발에 적합한 샴푸를 만들었다’며 클로브 샴푸를 소개하기 시작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발 손님을 위한 캐모마일 샴푸, 컬러가 손상된 모발을 위한 블루 말바 허브 샴푸도 만들었고요.

▲사진 = 모발 본연의 색깔을 강화시켜주는 샴푸 세 종은 현재도 판매 중이죠 ©Aveda

아베다는 천천히 성장해 나갔어요. 그러다 어느 시점부터는 아베다의 자연주의 콘셉트가 더 이상 특이한 게 아닌 주류가 되기 시작했죠. 일례로 1990년 에스티 로더 그룹에서는 오리진스(Origins)라는 아로마테라피 콘셉트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고요.

아베다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베다만의 독특했던 유통 방식이었는데요. 아베다는 처음부터 미용실에서만 유통을 했었어요. 그러다 1988년 매출이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자, 납품받으려는 미용실에서 다른 제품은 쓸 수 없고 아베다 제품만을 써야 하는 방식으로 유통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죠.

▲사진 = 이탈리아 밀라노의 아베다 살롱 ©Vogue Italy

당시에는 굉장히 이례적인 방식이었죠. 나중에 아베다를 인수한 에스티 로더 측에서 아베다의 유통 전략을 칭찬하기도 했는데, 아마도 브랜딩과 이익에 모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아베다는 그렇게 1986년 연매출 120억 원, 1991년 550억 원, 1994년 770억 원 등을 달성하며 급격히 성장해 나갔죠. 1997년에는 3,300억 원 정도의 금액으로 에스티 로더 그룹에 인수되었고요.


창업주와 브랜드의 현재

호스트 레켈바커는 아베다가 인수된 후 몇 년이 지나 아베다를 떠났고, 겸업 금지가 풀린 2008년부터는 인텔리전트 뉴트리언츠(Intelligent Nutrients)라는 오가닉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 운영했어요. 그러다 2014년 안타깝게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죠.

▲사진 = 딸 니콜(좌)과 아내 키런(우)이 현재도 인텔리전트 뉴트리언츠를 운영하고 있어요. ©The Business Journals

 

아베다의 베스트셀러로는 샴푸나 트리트먼트 같은 일상적인 제품보다는 두피 클렌저 같은 전문적인 제품이 많은데요. 그중에도 우든 패들 브러시는 ‘빗이 다 똑같지 뭐’라는 편견을 말끔하게 사라지게 하는 제품으로 유명합니다. 두피 마사지 효과도 있으면서 빗는 순간 머리가 찰랑찰랑해져요. 늘 면세점 순위권을 지키고 있기도 하고요.

 

▲사진 = 아베다 우든 패들 브러시 ©Aveda Instagram

아직 휴가를 다녀오지 않으셨다면, 면세점에서 아베다 헤어 브러시 하나 장만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휴가 내내 부드러운 머릿결을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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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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