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 루부탱 (Christian Louboutin) 브랜드 스토리

기사입력 : 2019-07-08 08:56:50 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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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Sex and the City)를 보면 여자 주인공들이 패셔너블하게 차려입고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자주 나오곤 하는데요. 이 드라마에서 유독 많이 등장하는 제품 중 하나가 바로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입니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명품 패션 브랜드입니다. 패션 중에서도 구두에 가장 특화되어 있는 곳인데요. 한 켤레에서 400달러부터 시작해 6,000달러를 호가하는 이 럭셔리 구두 브랜드는, 빨간 밑창의 섹시하고 화려한 하이힐로 유명합니다.

  

▲사진-크리스찬 루부탱 구두 ©Chris Luttrell

  

  

창업주 크리스찬 루부탱의 이야기

 

▲사진 - 크리스찬 루부탱 ©크리스찬 루부탱

 

크리스찬 루부탱은 1963년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명의 누나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막둥이 남동생이었죠. 가구 제작자였던 루부탱의 아버지는 집에 없을 때가 많았기에, 루부탱은 거의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와 누나들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해요.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커서 그랬던 걸까요. 그의 하이힐에 대한 열정은 굉장히 어린 나이인 13살 무렵부터 시작됩니다.

 

▲사진=크리스찬 루부탱의 어린 시절 ©BKRW

 

바로 집 근처에 있던 국립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예술 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d’Afrique et d'Océanie)에서 말이죠. 프랑스 시대 식민지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었는데, 이국적인 오브제와 지하에 있는 아쿠아리움을 보느라 루부탱은 그 곳에 자주 들르곤 했습니다.

  

하루는 그 박물관 입구에 스케치 하나가 그려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높고 가는 굽의 스틸레토 힐이 그려진 스케치였는데, 스케치 위에는 빨간색으로 엑스(X) 표시가 되어 있었죠. 바로 ‘스틸레토 힐 금지’ 표지판이었던 겁니다. 그는 그 표지판에 완전히 매료됐습니다. 당시 루부탱은 생애 최초로 스틸레토 힐을 접한 거였다고 하죠. 루부탱은 하이힐 스케치 자체에도 끌렸고, 하이힐이 ‘금지’되었다는 사실도 무척 매력적으로 느꼈다고 합니다.

  

실제로 루부탱은 반항아 기질이 다분한 소년이었습니다. 12살 때 이미 학교에서 무려 3번이나 퇴학을 당한 상태였고, 집에서도 계속 가출을 했죠. 결국 루부탱의 어머니는 그가 집에서 나가 친구와 살도록 허락해 주게 됩니다. 루부탱은 집에 나가서 살면서도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결국 16살 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말죠. 그리고 그는 이집트로 여행을 떠납니다. 인도에서도 1년 살고요.

  

파리로 돌아온 후인 1980년, 그는 17세의 나이로 폴리 베르제르(Folies Bergère)라는 카바레에 취직을 하게 되는데요. 댄서를 위해 온갖 일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구두 드로잉은 수없이 했지만 아직 구두를 실제로 만들어본 적이 없던 루부탱에게 좋은 기회였죠. 커피 타기, 의상 수선하기, 기술자들 돕기 등 소소한 일들이 모두 그의 몫이었기에, 댄서들과 하루종일 붙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댄서들이 신발을 신고 발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신발을 신은 자신의 전체적인 모습을 앞뒤에서 살펴본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리고 굽을 최대한 높게 신기를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발에서 피가 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죠.

  

▲사진 = 폴리 베르제르 ©Folies Bergere Fleur de Lotus/Flickr

 

그렇게 댄서들과 일하는 건 좋았지만, 그의 꿈은 슈즈를 만드는 것이었기에, 그의 꿈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 어느 날 루부탱은 갑자기 일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1982년 찰스 쥬르당(Charles Jourdan)이라는 유명한 파리의 구두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게 되죠. 루부탱이 그린 구두 그림이 안드레 페루지아(André Perugia)라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구두 디자이너를 떠올리게 한 덕분에 말이죠.

 

찰스 쥬르당에서 1년간 경력을 쌓고, 루부탱은 샤넬, 입생로랑, 모드 프리즌(Maud Frizon) 등 명품 브랜드의 프리랜서 일을 합니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가 25살이 되던 1988년, 그는 그가 어릴 적부터 동경해 왔던 최고의 디자이너 밑에서 일하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당시 80대였던 로저 비비에(Roger Viver)의 회고전을 돕는 어시스턴트로 6개월간 일을 하게 된 건데요. 

 

▲사진 - 로저 비비에. 1998년 80대였던 로저 비비에는 20대였던 크리스찬 루부탱과 자신을 비슷한 나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당시에도 에너지 넘쳤다고 해요. ©A. G. Nauta Couture 

 

로저 비비에와 함께 일하면서 루부탱은 어릴 적의 꿈을 드디어 이룬 것 같았다고 해요. 이러한 거장과 일을 했으니, 다른 누구를 위해서 슈즈 디자인을 하는 건 의미 없다고 느꼈고요. 유년시절의 꿈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새로운을 일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게 되죠. 

 

그렇게 루부탱은 구두 디자이너가 아니라 조경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2년만에 다시 구두 디자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도 ‘크리스찬 루부탱’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로 말이죠.

  

그가 다시 구두 디자인을 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습니다. 루부탱은 파리의 베로-도다(Véro-Dodat) 갤러리라는 파리의 쇼핑 공간에서 빈티지 램프를 사려고 하던 중이었는데요. 그 상점 주인이 바로 갤러리 오너였고, 갤러리에 상가가 하나 비어 있으니 루부탱에게 구두 가게를 열라는 제안을 했던 겁니다. 

 

그렇게 1991년 11월, 크리스찬 루부탱의 첫번째 구두 숍이 오픈하게 됐습니다.

 

▲사진=갤러리 베로-도다의 모습. 천장이 유리지붕으로 덮여 있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산책하고 쇼핑할 수 있는 

통로죠. ©Jean-François Gornet

  

 

크리스찬 루부탱 성공의 비결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는 기존의 구두와는 다른 확실한 차별점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5~6cm의 미들 힐이 주류였는데,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의 힐은 12cm로 두 배 이상 높은 것들이 많았던 겁니다. 게다가 앞 코도 뾰족하고 힐도 얇아서 섹시한 느낌이 났죠. 12cm라는 높이에 비해서는 발이 많이 아프지도 않았고요.

  

▲사진 =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 ©Guillaume Thomas


이렇게 섹시하면서도 기존 상품과는 달랐던 크리스찬 루부탱의 구두는 ‘인플루언서’, 말그대로 영향력 있는 사람을 만족시키게 됐습니다. 그 사실이 우연히 주요 매체에 소개가 됐고요. 즉, 제품력 덕분에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마케팅이 이뤄진 셈입니다.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가 만족시켰던 인플루언서는 바로 캐롤라인 모나코 공주(Princess Caroline of Monaco)였습니다. 샵을 오픈한지 한달 정도 되었을 때 그녀는 크리스찬 루부탱 가게를 방문해 구두 몇 켤레를 사 갔는데요, 그 다음에는 친구도 한 명 데려와서 루부탱의 구두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여배우 아누크 에메(Anouk Aimee) 느낌이라며 말이죠.

 

▲사진 = 프랑스 배우 아누크 에메 ©Henry Clarke  


사실 루부탱은 그녀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크리스찬 루부탱 가게를 둘러보고 있던 패션 매거진 더블유(W)의 미국 기자는 그녀를 알아봤죠. 그 기자는 모나코 공주가 극찬한 이 구두 가게에 대한 기사를 냈습니다. 그렇게 크리스찬 루부탱은 순식간에 핫하게 라이징하는 프랑스 럭셔리 구두 샵이 되었습니다. 미국 바이어들이 몰려들었죠.

 

▲사진 = 1991년의 캐롤라인 모나코 공주 (우) ©Pinterest

 

그리고 이렇게 방문한 미국 바이어들이 해줬던 조언이 크리스찬 루부탱의 비용 측면에서 도움을 주게 됩니다. 미국 바이어들은 크리스찬 루부탱의 구두가 너무 비싸다는 피드백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 초반인데 그 시절에 크리스찬 루부탱의 구두는 300달러에 육박했거든요. 

 

루부탱은 생산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을 했습니다. 크리스찬 루부탱은 당시 프랑스 니스의 작은 공장에서 구두를 생산했는데요. 루부탱이 수많은 명품 브랜드 구두를 디자인하긴 했어도,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제작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업계의 신규 진입자나 다름이 없었죠. 자연히 공장에서는 높은 생산비를 요구했습니다. 

  

구두 제작에 필요한 가죽을 크리스찬 루부탱에서 제공한다면 110달러, 공장에서 제공한다면 125달러라는 비싼 조건이었죠. 생산비의 두 배에 부가가치세 20퍼센트를 붙이고 나면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의 판매가는 최소 270달러가 되었던 겁니다.  

 

루부탱은 이러한 사정을 미국 바이어들에게 이야기했고, 미국 바이어들은 이탈리아 쪽을 살펴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그 조언을 토대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에서 좋은 공장을 찾아냈죠. 덕분에 생산비는 절반으로 줄면서 퀄리티는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변을 넓혀야 하는 브랜드 론칭 초기에 생산비에 여유가 생긴 건 굉장한 이점이었을 겁니다. 

 

세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크리스찬 루부탱 성공의 계기는 바로 빨간색 밑창(red sole)입니다. 빨간색 밑창은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 특유의 섹시한 매력을 더해줌과 동시에,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명품 로고로서 작용하는데요. 

  

1993년 어느 날, 루부탱은 시제품으로 온 구두가 너무 밋밋하게 느껴져서,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 중이었다고 합니다. 그 때 루부탱의 눈에 들어온 건 직원이 빨간색 매니큐어를 손톱에 바르고 있는 모습이었죠. 그는 직원의 매니큐어를 낚아채 구두 밑창에 발랐습니다. 밋밋해 보였던 구두는 일순간에 완벽해졌죠.

 

▲사진 = 크리스찬 루부탱의 팡세(Pensee) ©크리스찬 루부탱

 

그렇게 빨간색 밑창의 하이힐은 루부탱의 시그니처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는 더욱 더 도발적이고 매력적이면서도, '내가 지금 이 값비싼 크리스찬 루부탱 명품 구두를 신고 있다'라고 누구에게나 알리기 쉬워지게 됐죠. 사람들은 자연히 더욱더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를 갈망하게 됐습니다.

  

마지막 성공의 계기는, 사실 계기라기보다는 성공의 발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모은 돈이 아주 많지도 않았던 루부탱이 어떻게 명품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베로-도다 갤러리 오너가 루부탱에게 매장을 차리라고 제안했을 때, 루부탱을 응원해주고 지분 투자까지 한 오랜 친구가 두 명 있었습니다. 바로 앙리 세두(Henri Seydoux)와 브루노 챔벨랜드(Bruno Chambelland)였죠.

  

▲사진 = 앙리 세두. 프랑스 배우 레아 세두의 아버지이기도 하죠. ©Speakhertz

 

루부탱과 세두는 어릴 때 학교에서 만나서 침대를 망가뜨릴 정도로 침대에서 함께 뛰어놀며 친해진 사이고요. 챔벨랜드는 엄청난 댄스광인 루부탱이 미성년자로 클럽을 다니던 시절 친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앙리 세두는 프랑스의 손꼽히는 자산가 집안 출신입니다. 집안 자체의 부의 규모가 7조 원이 넘죠. 앙리 세두의 할아버지는 프랑스 대표 영화사 고몽(Gaumont)의 회장이고, 앙리 세두는 전세계적인 드론 회사 패럿(Parrot)의 창업주이기도 합니다. 브루노 챔벨랜드도 집안에서 예전에 프랑스의 성을 소유했던 걸로 보아 유복한 것으로 보이고요. 챔벨랜드는 루부탱보다 나이가 15살이나 많기도 했으니까요.

   

즉, 이 두 명의 친구가 아니었다면 크리스찬 루부탱이 매장을 오픈하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루부탱이 모아온 돈과 앙리 세두, 브루노 챔벨랜드가 투자한 돈 2억여 원으로 베로-도다 갤러리에 매장을 오픈할 수 있었다고 하죠.

  

현재도 이 세 명은 끈끈한 파트너십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브루노 챔벨랜드는 크리스찬 루부탱 기업의 대표로, 앙리 세두는 이사로 재직 중이죠. 이런 든든한 친구들 덕분에 루부탱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게 바로 크리스찬 루부탱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을 거고요.

 

▲사진 = 챔벨랜드와 루부탱은 1988년 챔벨랜드의 조상들 소유였던 성을 함께 매수해 레노베이션했습니다.

사진은 그 성의 정원. ©Jane Hilton 

 

▲사진 = 챔벨랜드와 루부탱이 1988년 매수한 성의 모습 ©Jane Hilton

 

 

창업주와 브랜드의 현재

  

크리스찬 루부탱은 2007년부터 연속으로 3년간 여성 슈즈 부문 럭셔리 브랜드 1위에 꼽혔습니다. 쉽지 않은 성과죠. 그리고 지금은 여성 슈즈뿐만 아니라, 남성 슈즈와 여성 가방, 그리고 뷰티까지 영역을 확장했고요. 크리스찬 루부탱의 구두는 한 해에 50만 켤레 이상 판매된다고 해요.

  

크리스찬 루부탱은 비욘세, 리한나, 미란다 커 등 셀러브리티가 사랑하는 브랜드로도 유명합니다. 오죽하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지만, ‘크리스찬 루부탱’을 신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죠.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무려 루부탱(Louboutins)이라는 제목의 찬가를 만들기까지 했습니다. 주인공 여성이 남자친구와 헤어졌지만 크리스찬 루부탱을 신고 자신감을 회복한다는 내용이죠.

  

▲사진 = 제니퍼 로페즈의 루부탱(Louboutins) 표지 ©위키피디아

  

2014년에는 크리스찬 루부탱은 뷰티 시장에도 진출하게 됩니다. 크리스찬 루부탱의 시그니처인 빨간색 밑창이 매니큐어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 답게, 네일 제품부터 첫 선을 보였죠. 이후 립 제품과 향수, 그리고 아이 메이크업 제품으로 확장했습니다.

 

루부탱의 뷰티 제품들은 개성적인 패키징과 높은 가격으로 유명합니다.

  

네일 폴리쉬부터 립스틱까지 모두 크리스찬 루부탱의 뾰족한 힐을 떠올리게 하죠. 실제로 크리스찬 루부탱에서 출시한 첫 네일 라인은 20cm가 넘는 길이인데, 이는 크리스찬 루부탱 구두의 힐과 동일한 길이라고 합니다. 화장품이라는 기능을 넘어서 패션 오브제의 역할까지 하는 거죠.

  

▲사진 = 크리스찬 루부탱 하이힐과 동일한 길이의 네일 폴리쉬 ©크리스찬 루부탱 

  

빨간색 제품들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습니다. 빨간색이 크리스찬 루부탱이라는 브랜드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니까요. 크리스찬 루부탱에서는 처음 뷰티 라인을 출시할 때 빨간색 네일 폴리쉬 한 개 제품만 론칭하고, 한 달 이후에 나머지 서른 개의 색상을 선보였습니다. 빨간색 네일 폴리쉬에 충분히 스포트라이트를 주기 위함이었죠. 빨간색 색상의 제품들의 패키징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요.

 

▲사진 = 세 번째 빨간색 립스틱만 케이스 색깔이 다르죠 ©크리스찬 루부탱 

   

그리고 크리스찬 루부탱 뷰티 제품들은 초고가입니다. 매니큐어는 약 5만원, 아이라이너는 8~9만원, 립스틱은 약 10만원이니 다른 명품 브랜드와 비교해서도 2배 넘게 비싸죠.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매니큐어, 립스틱, 립글로스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우리나라에는 올해 6월 크리스찬 루부탱 뷰티 국내 1호 매장이 신세계면세점 명동본점에 론칭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리며 하루 매출만 십억 원이 넘었죠. 패션 매장은 그보다 앞선 2011년 10월에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에 론칭했고요. 

 

▲사진=크리스찬 루부탱 뷰티 제품들 ©크리스찬 루부탱

  

창업주 크리스찬 루부탱은 지금도 즐겁게 디자인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신도 이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신기하다고, 일하는 게 가장 재미나다고 말하는 크리스찬 루부탱. 사진만 봐도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죠. 실제로 재밌는 사진이 많아서 웃음이 나기도 하고요.  

 

▲사진 = 재미있고 유쾌한 크리스찬 루부탱의 모습 ©Montecristo Magazine(좌), 크리스찬 루부탱(우) 

 

이런 브랜드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크리스찬 루부탱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켜가면서 더욱더 성장해 나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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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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