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면세점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 열전 (7) 왕가의 보석, ‘까르띠에’

최초의 백금 결혼반지 제작, 왕족·귀족에 인기
‘루이 까르띠에’, ‘탱크’ 시계·‘트리니티 링’ 등 대표작 선보여
헐리우드 여배우들의 보석,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가치 오를 수록 매출도 ↑, '왕가의 보석' 가치 이어가
기사입력 : 2019-03-29 18:22:56 김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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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의 백금 결혼반지, ‘왕실 보석상’ 명성 얻어

명품 주얼리 ‘까르띠에’(Cartier)의 역사는 1847년 파리 몽토르괴이 29번지 보석 가게의 견습생이 스승에게 가게를 물려받으며 시작됐다. 가게를 운영하게 된 ‘루이 프랑수아 까르띠에’는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L과C로 둘러싼 하트와 마름모꼴 모양을 장인 마크로 등록했다. 이후 상류층이 많이 다니는 이탈리아 대로 9번가로 매장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까르띠에의 뛰어난 세공 기술과 디자인 감각이 알려지면서 1850년대 말부터는 프랑스 왕실에 작품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손자인 ‘루이 까르띠에’ 대인 1898년에는 최초로 결혼 반지를 백금(플래티나)으로 제작하며 화제가 됐다. 백금은 강도가 높고 색이 밝지만 모양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1899년에는 라페 거리 13번지에 ‘까르띠에’ 이름으로 매장을 열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국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까르띠에의 백금 장식 다이아몬드의 판매가 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1902년 영국 왕실은 ‘까르띠에’를 ‘왕실 보석상’으로 임명하고 대관식에서 쓸 27개의 티아라 제작을 맡겼다. 상품을 주문한 에드워드 7세는 ‘까르띠에’에게 “보석상의 왕이요, 왕의 보석상”이라고 극찬했다. 이후 포르투갈과 스페인, 태국의 왕실에서도 ‘까르띠에’를 ‘왕실 보석상’으로 임명하면서 제품에 ‘왕가의 보석’이라는 별칭이 자리 잡았다.

□ ‘루이 까르띠에’, 브랜드 위상 높인 혁명가

 

▲출처=까르띠에 홈페이지 / 까르띠에 링 ‘팬더’


이 시기 ‘까르띠에’의 손자 ‘루이 까르띠에’가 경영권을 잡고 본격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본인이 수집한 이집트 고미술품 디자인을 작품에 반영하면서 유행을 주도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1904년부터는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형태인 아르데코 스타일의 장신구를 제작했다. 1910년에는 파리에서 공연된 발레극 ‘셰헤라자데’에서 받은 동양적 영감을 작품에 반영했다. 1913년에는 까르띠에 뉴욕 지사에서 페르시아·아랍·러시아·중국 등 동양 문화를 반영한 작품 50여 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팬더’와 같은 히트작의 디자인도 이 시기에 완성됐다.

본격적으로 시계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산토스 시계’는 ‘루이 까르띠에’가 1904년 친구이자 비행기 조종사인 ‘알베르토 산토스 뒤몽’을 위해 제작한 것으로 상용화된 최초의 손목시계로 꼽히기도 한다. 현재까지 제작되고 있는 이 제품은 부속품과 나사가 하나로 고정된 베젤을 만들어 시계판 위에 유리를 고정시킨 것이 특징이다. 1907년 시계 제조장인 에드몽 예거와 독점으로 계약해 공동 작업으로 손목시계 버클의 특허권을 따내 시계 제조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그래픽=최동원 기자

‘루이 까르띠에’는 이후에도 뛰어난 재능을 과시하며 브랜드 위상을 높였다. 1916년에 선보인 ‘탱크’ 시계는 기하학적인 디자인으로 ‘앤디 워홀’과 ‘다이애나 왕세자비’ 등 유명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1924년에는 일상생활을 위한 보석류 제작 부서인 S부서를 설립하고 ‘트리니티 링’을 디자인 했다. 시인이자 친구인 장 콕토를 위해 만든 것으로 우정·충성·사랑을 상징하는 화이트·옐로·핑크 골드의 세가지 색 링을 겹쳐 만든 제품이다. 둘 다 현재까지도 사랑 받는 대표 상품으로 남아있어 시대를 뛰어넘는 감각을 엿볼 수 있다.

□ ‘그레이스 켈리’·‘엘리자베스 테일러’ 여배우를 빛내다

‘까르띠에’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영화 배우이자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식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레이스 켈리’는 결혼식을 촬영할 권리를 넘겨주는 것으로 영화사와의 남은 계약 기간을 대신했다. 덕분에 결혼식은 TV에 생중계 됐고 ‘모나코에서의 결혼’이라는 영상물로 제작되기도 했다. 여기서 그레이스 켈리가 착용한 ‘클립 브로치’ 등의 귀금속은 큰 화제를 불러 모으며 선망의 대상이 됐다.

1969년 ‘리처드 버튼’이 아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선물하려고 구입한 69.42캐럿의 다이아몬드도 ‘까르띠에’의 대표 일화 중 하나다. 당시 1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지불하며 역대 최고 가격을 경신한 다이아몬드는 헐리우드의 배우였던 두 부부의 사치 행각의 하이라이트였다. ‘까르띠에’는 판매 전 뉴욕 5번가에 위치한 까르띠에 매장에 이 다이아몬드를 5일간 전시하는 것을 판매 조건으로 내세웠고 전시 기간 동안 세기의 선물을 구경하기 위해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 ‘발롱 블루’ 등 히트작 이어져, ‘세계 최고’ 명성 ‘이상 무’

이렇게 대중적 관심이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한 ‘까르띠에’는 전세계적으로 제품 전시회를 이어가고 있다. 1995년 일본 도쿄 데인미술관을 시작으로 2004년 교토와 다이고사, 중국 상하이박물관을 비롯해 2006년 싱가포르 국립 박물관 등에서 소장품을 전시했다. 한국에서는 2002년 예술의 전당과 2008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다.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파리 장식 미술관 등에는 작품을 장기 대여하면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출처=까르띠에 홈페이지 / 까르띠에 워치 ‘탱크’(좌), ‘발롱 블루’(우)

 

새롭게 내놓는 제품들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2007년에 선보인 시계인 ‘발롱 블루’는 ‘까르띠에’의 철학을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으며 단기간에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예물용으로 인기가 많아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 제품 라인업에 신제품들이 더해지면서 판매량 증가는 물론 브랜드 이미지도 젊고 새로워지는 효과를 보고 있다.

높아지는 가치와 판매량에 걸맞게 매출도 안정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지난 2018년 ‘까르띠에’의 매출은 64억 4,700만 유로(약 8조 3,948억 원)로 전년 대비 8.7% 증가했다. ‘끌로에’·‘몽블랑 등의 모 기업인 ‘리치몬드 그룹’ 매출의 59%에 해당하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주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국 시장 전자상거래 진출 등 판로 확대도 이어가고 있다. ‘왕가의 보석’이라는 세계 최고 귀금속 브랜드의 명성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향방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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