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면세점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 열전 (6) 잇백 열풍의 시초 ‘크리스챤 디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선보인 ‘뉴룩’으로 폭발적 반응
‘디올 쇼’ 개최해 혁신적 패션 선보여, 라이센스 판매로 재정 확대
‘크리스챤 디올‘ 1957년 사망, ‘입 생 로랑’·‘마르크 보앙’ 등 뒤이어
‘베르나르 아르노’ 인수, ‘LVMH’ 그룹으로 재탄생
잇백 열풍 ‘레이디 디올’ 젊은 소비자 인기 얻어
‘LVMH’ 완전 편입, 중국 시장 진출 노력 이어가
기사입력 : 2019-03-28 17:49:25 김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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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처럼 화려한 옷, ‘프랑스 패션 선구자’

‘크리스챤 디올’은 1946년 12월 6일 40세가 넘은 나이에 파리 몽테뉴 거리에 처음으로 자신의 부티크를 열었다. 본격적으로 디자이너 커리어를 시작한 지 5년 만이었다. 1947년 첫 컬렉션을 연 그는 꽃처럼 화려한 옷을 선보이며 큰 주목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2년 밖에 안 된 상황이었고 천편일률적인 옷을 배급 받아 입던 여성들은 패션에 목 말라 있었다. 디올이 선보인 스타일은 ‘뉴룩’으로 불리며 유럽과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예술가들과 두루 친했던 디올은 화랑 운영을 하다가 집안이 망한 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러스트와 의상 데생 등을 하면서 20대를 보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입대해 1941년에야 간신히 전역할 수 있었다. 이후 프랑스 패션 브랜드인 ‘뤼시앵 를롱’에 취업했고 여기서 만난 ‘피에르 발망’의 회사로 옮겨 37세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디자이너 커리어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자신의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코코 샤넬과 더불어 프랑스 패션의 선구자로 꼽히게 됐다.
 

▲출처=디올 홈페이지 / 2018년 중국 상하이 오뜨꾸뛰르


‘크리스챤 디올‘은 첫 컬렉션 이후 매년 1월과 7월에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서 ‘디올 쇼’를 개최했고 높은 인기를 누리며 혁신적인 패션을 선보였다. 1950년 ‘버티컬 라인’·1951년 ‘오벌 라인’·1952년 ‘시뉴에스 라인’·1953년 ‘튤립 라인’·1954년 ‘H라인’·1955년 ‘A라인’과 ‘Y라인’ 등이 유명하다. 라이센스 개념을 도입해 자회사를 만들고 ‘크리스챤 디올‘ 상표권을 팔면서 재정도 튼튼해졌다.

1950년대가 되자 ‘크리스챤 디올‘은 8개의 회사와 16개의 계열사, 전 세계에 1,700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형 패션 브랜드가 됐다. 이후 1957년 10주년 컬렉션을 앞두고 3번째 심장마비로 쓰러진 ‘크리스챤 디올’은 5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이후 그의 오른팔로 불리던 ‘입 생 로랑’이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지만 곧 해고됐고 그 뒤를 ‘마르크 보앙’이 물려받아 1989년까지 활약했다.

□ ‘베르나르 아르노’ 시대, 젊은 이미지로 ‘재탄생’

1980년대가 되자 ‘크리스챤 디올‘을 소유한 텍스타일 회사 ‘부사크’가 휘청거리면서 프랑스 정부의 거듭된 재정 지원에도 경영 악화에 빠져들었다. 이때 부사크 그룹을 인수한 것이 현재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였다. 인수 후 수익이 나는 ‘봉마르셰 백화점’과 ‘크리스찬 디올’만 남기고 나머지 자회사들을 모두 처분하며 경영을 정상화 시켰다. 1990년에는 이들 사업체를 기반으로 ‘LVMH‘ 그룹을 인수하면서 순식간에 패션 제국을 구축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크리스찬 디올’에 변화를 주기 위해 1989년에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지안 프랑코 페레’를, 1996년에는 영국 출신의 ‘존 갈리아노’로 수석 디자이너를 갈아치웠다. ‘존 갈리아노’는 지방시의 디자이너로 일하던 젊은 천재 디자이너로 신문지가 프린트된 드레스 등 파격을 선보였다. ‘크리스찬 디올’은 오랜 단골 고객들을 잃었지만 젊은 고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이미지를 새롭게 했다.

□ ‘레이디 디올’·‘디올 옴므’, 젊은 소비자 마음 사로잡아


▲출처=크리스챤 디올 홈페이지 / 양가죽 레이디 디올 제품

특히 젊은 소비자들에게 인기 있는 제품으로는 대표 상품인 ‘레이디 디올’이 있다. 1995년 프랑스의 영부인인 ‘마담 시라크’는 ‘크리스찬 디올’의 ‘추추’백을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선물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공식 석상에 자주 이 백을 들고 나왔고 그녀의 칭호 중 하나인 ‘레이디’를 붙여 ‘레이디 디올’ 백으로 이름을 바꿨다. 당시 10만 개 이상 팔리며 잇백 열풍의 시초가 된 이 백은 지금도 인기 있는 제품으로 ‘크리스찬 디올’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남성복 라인인 ‘디올 옴므’도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한 요인이다. 2001년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수석 디자이너에 취임한 ‘에디 슬리만’은 극단적으로 슬림한 핏의 남성복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샤넬’과 ‘펜디’의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가 슬림한 ‘디올 옴므’를 입기 위해 살을 빼는 모습을 보이는 등 남성복 트랜드를 바꿨다. 브래드 피트·믹 재거 등 남성 외에도 마돈나 등 여성 스타들도 ‘디올 옴므’를 입은 채 공식 석상에 나서면서 패션 트랜드를 바꾼 것으로 평가된다.

□ 2017년 ‘LVMH’ 완전 편입, 중국 시장 ‘도전’ 이어가

 

▲그래픽=최동원 기자


‘크리스찬 디올’은 지난 2017년 지분 74.1%를 보유한 ‘LVMH’ 그룹에 25.9%의 잔여 지분을 매각했다. ‘LVMH’ 그룹은 120억 유로(약 15조 원)의 인수금을 들여서 100%의 지분을 확보했다. 지배 구조를 단순화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2017년 ‘LVMH’ 매출은 480억 5,700만 유로(약 61조 5,389억 원)로 17.2% 상승하면서 확고부동한 성장으로 화답했다.

이런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중국 시장을 향한 새로운 도전도 이어가고 있다. 자체 사이트를 통해 중국 전자상거래에 진출한데 이어 2018년 상하이에서 S/S 오뜨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이는 등 본격적인 중국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22일 발표된 '브랜드 파이낸스'(Brand Finance) 자료에 따르면 ‘크리스찬 디올’의 브랜드 가치는 전년 대비 50% 성장한 46억 8,000만 달러(약 5조 3,188억) 달러로 나타났다. 중국 시장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새로운 ‘잇백 열풍’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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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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