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면세점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 열전 (3) ‘전통의 강자’ 중국서도 인기몰이 ‘루이 비통’

1854년 파리 1번가 방돔 광장 근처에 트렁크 매장으로 시작
포장용 상자 제조 견습생 '루이 비통', 왕비·귀족 짐 꾸리는데 '정평'
제2차 세계 대전 후 인기 하락, 뉴욕·아시아 직영점 오픈해 '위기 탈출'
1987년 LVMH 그룹 창립 후 1990년 '디올' 아르노 회장에 M&A 당해
마크 제이콥스 영입 후 패션·시계 등 사업 범위 확장
1896년 모조품 막으려 만든 '모노그램 캔버스 백',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
2011년 인천공항 입점하며 면세 시장 진출, 2019년도 중국 면세 검색 순위 1위
아시아 시장 '순풍', 중국 전자상거래 적극 진출로 판로 다양화
기사입력 : 2019-03-25 10:35:17 김일균 기자
  • 글자크기
  • +
  • -
  • 인쇄


□ 트렁크 제조사, 세계 최고 여행용품 매장으로 재탄생

명품 브랜드의 대표 주자인 ‘루이 비통’은 1854년 뇌브 데 카푸신 4번가에서 트렁크 판매업으로 시작했다. 지금의 ‘오페라 가르니에’(Opéra Garnier) 옆이며 ‘방돔 광장’과 두 블록 거리다. 매장과 ‘방돔 광장’을 잇는 길은 리츠 호텔과 시계·보석 등 사치품 매장이 가득해 여행용 가방의 수요가 높은 지역이다. 창업주 루이 비통의 뛰어난 사업 수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루이 비통은 16살 무렵 포장용 상자 제조자 견습생으로 들어가 하루 13시간씩 귀족들의 여행 짐을 꾸렸다. 당시 유행한 귀부인들의 맞춤복은 14미터 이상의 옷감을 사용해 부피가 컸고 짐 싸기가 힘들었다. 루이 비통은 이런 대량의 짐 싸기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프랑스 왕비를 비롯해 당대의 귀부인들이 그를 지목해 짐 싸기를 맡길 정도였다.  

 

▲사진=DFN / 루이비통 전시회 현장. 루이비통의 클래식한 트렁크가 전시돼 있다.


루이 비통은 이런 경험 속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축적해 실용적인 제품들을 만들었다. 트렁크를 평평하게 만들어서 마차 위에 쉽게 쌓을 수 있게 만들었다. 무거운 가죽 소재 대신 무게가 가벼운 포플러 목재를 사용했다. 표면에 은회색 방수 면 캔버스를 씌워 물에 빠져도 젖거나 가라앉지 만들었다. 사업은 번창해 1914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행용품 매장 ‘루이 비통 부티크’를 개점했다.

□ 아시아 딛고 명품 브랜드로, LVMH 그룹 구축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루이 비통’의 명성도 빛이 바랬다. 단골 고객 위주로 여행 가방을 만들어 파는 폐쇄적인 구식 브랜드라는 비판을 받았다. 1977년 ‘앙리 라카미에’가 경영자로 올라서면서 이런 인식을 바꿨다. 중간 상인들을 모두 정리하고 세계 쇼핑 중심지 뉴욕 57번가와 아시아 전역에 브랜드 직영점을 열며 취임 7년 만에 매출을 15배 끌어올렸다.
 

▲사진=DFN / 루이비통 전시회 현장. 제품 수공예 제작과정.

취임 첫 해부터 경제 부흥기를 맞은 일본에서 주문이 밀려 들었다. 다음 해인 1978년 도쿄와 오사카에 매장을 열고 직접 진출하면서 제품 수요는 더 늘어났다. ‘루이 비통’은 작업장을 늘려 수요를 감당했고 현재 프랑스에 11개소·스페인에 2개소·미국에 1개소로 총 14개소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루이 비통’은 이런 급격한 성장에 발 맞춰 상장 절차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앙리 라카미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1987년 세계적인 샴페인 기업인 ‘모엣 헤네시’를 인수해 지금의 ‘LVMH’ 그룹을 만들었다. ‘LVMH’ 그룹은 프랑스 상장 기업 중 시가 총액 6위 대기업이 됐지만 병합 전 ‘루이 비통’과 ‘모엣 헤네시’ 세력 간 갈등이 깊어졌다.

이들 간의 균형은 1989년 ‘크리스찬 디올’의 운영자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등장하면서 깨진다. '크리스찬 디올'은 ‘LVMH’ 그룹의 지분 45%를 확보한 후 ‘모엣 헤네시’의 지지를 받아 경영권을 가져왔다. 가족 기업의 명맥이 끊긴 ‘루이 비통’은 세계 최고의 다국적 럭셔리 그룹의 선봉에 서게 된다.

□ 마크 제이콥스 영입, 토탈 브랜드로 변모

아르노 회장은 ‘루이 비통’에 신비주의와 판타지를 심는 전략을 펼치면서 화제성을 부여했다. 창업 초기 열린 첫 작업장 아니에르 공방을 기자들에게 공개한 것이 대표 사례다. 대량 생산 시대에 트렁크를 수작업 생산하는 장인들의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또 100년 전 생산됐던 ‘다미에 캔버스’ 가방을 재출시하는 등 제품에 브랜드 역사를 덧입히는 작업도 이어갔다.

‘스페셜 오더’라는 트렁크 상품 주문 제작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브랜드 정체성 유지에도 힘 쓰고 있다. ‘루이 비통’은 1869년 프랑스 탐험가를 위해 침대로 변신하는 트렁크를 만드는 등 사용자 맞춤 제품들을 생산해왔다. 장인이 수작업하고 화학 소재를 배제한 재료로 직접 만들어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 사진=DFN / 마크 제이콥스와 스테판 스프라우스가 디자인한 백.

 

1997년부터는 수석 디자이너로 미국 출신의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를 선임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기존의 ‘모노그램 캔버스’를 변형한 ‘그라피티 모노그램’ 등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며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했다. 일본의 팝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한 ‘멀티 컬러 모노그램’ 제품은 콜라보레이션 유행을 만들었다. ‘루이 비통’은 파격적인 변화와 함께 의상·시계·슈즈까지 라인업을 확장하며 토탈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 중국서도 인기 '캔버스 백', 전자 상거래 적극 진출 '판로 변화 꾀하나'

‘루이 비통’하면 떠오르는 상품은 브랜드의 약자인 LV 마크로 뒤덮힌 '모노그램 캔버스 백'(Monogram canvas bag)이다. 1896년 탄생한 이 모노그램 무늬는 모조품을 방지하려 만든 디자인으로 브랜드의 대표 마크가 됐다. ‘루이 비통’은 창업 초기 최초의 사각형 트렁크가 출시된 이후 줄곧 모조품과 싸워가면서 브랜드 가치 유지에 주력해왔다.

공항면세점 입점을 꺼린 이유도 브랜드 가치 저하를 걱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2011년 세계 최초 인천공항면세점 진출이 화제가 된 이유다. ‘루이 비통’ 매장은 단숨에 중국과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들여 인천공항면세점을 2011년 세계 최고 면세점 1위에 올려놨다.

 

▲그래픽=최동원 기자


‘루이 비통’은 면세 시장에서도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중국 소비자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면세 검색 사이트 ‘Jessica's Secret Index’에 따르면 2019년 1·2월 핸드백 검색 1위에 ‘모노그램 캔버스 나노 스피디백’(Monogram canvas nano speedy bag)이 선정되면서 아시아 시장에서도 최고 브랜드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루이 비통’은 지난 2018년 7월부터 중국 전역으로 제품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실시하면서 전자상거래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관세 및 부가세 인하에 발맞춰 가격 인하도 단행하며 현지 진출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77년 규모 확장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던 것처럼 중국 시장을 성장의 전기로 삼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주)티알앤디에프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일균 기자
  • 글자크기
  • +
  • -
  • 인쇄

DFN Newsletter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의거하여,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함에 있어 정보주체로부터의 이용 동의 여부를 사전에 고지하고 있습니다. 정보주체가 되는 이용자께서는 아래 내용을 확인하시고,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ㆍ수집 이용 목적 : 구독자를 위한 의사소통 경로 확보

ㆍ수집하는 개인정보의 항목: 이메일,이름,회사명,전호번호

ㆍ보유및이용 기간: 메일링 해지시 까지(해지시 정보파기)

위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서에 동의 하시겠습니까?

DFN Newsletter
등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본 기사

Latest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