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에 자유 준 패션 선구자 '코코 샤넬'
1910년 파리 캉봉에서 모자 매장 '샤넬 모드'가 영업을 시작한다.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 일명 '코코 샤넬'이 설립한 이 매장이 세계 최고 브랜드 '샤넬'의 시작점이다. 본명보다 뮤직홀 가수로 일할 때 얻은 별명인 '코코'로 불린 그녀는 빈 손으로 시작해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를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후 수녀원에서 자란 '코코 샤넬'은 18세부터 일하던 봉제 회사를 그만두고 가수가 된다. 이후 연인의 투자를 받아 개업한 모자 매장이 성업하면서 의류까지 분야를 확장, 상류층 휴양지에 매장을 늘리며 승승장구 한다. 웨스트민스터 공작·디미트리 대공 등 상류 사회의 남성과 연애 편력을 이어가던 그녀는 '일이 우선'이라면서 평생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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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픽사베이 / 모나코 샤넬 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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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샤넬 홈페이지 / 2018 F/W 패션쇼 |
1971년 '코코 샤넬'의 사망으로 '샤넬' 브랜드도 침체기를 겪게 된다. 진부하다는 혹평을 들으며 내리막을 걷던 '샤넬'이 선택한 인물은 독일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였다. 1983년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된 그는 무려 37년 간 자리를 지키며 샤넬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특히 샤넬의 스타일을 지켜내면서도 화려하고 대중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트위드 소재를 활용하고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이는 등 샤넬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내면서 레이스와 색 등 다양한 요소들을 화려하게 사용해 '샤넬'의 디자인을 젊게 탈바꿈 시켰다.
그는 2019년 사망할 때까지 '샤넬' 뿐 아니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로도 동시에 활동했다. '펜디'의 경우 1965년부터 무려 55년동안 장기 집권하며 엄청난 창작 능력을 과시했다. 또 직접 사진을 공부해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거나 영화 감독으로 단편 영화를 찍으며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 '세계 3대 명품' 명성 '굳건', 디자이너 교체로 '새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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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최동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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