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면세점 세계 최고 ‘명품 브랜드’ 열전 (2) '칼 라거펠트’ 타계로 새 국면, ‘샤넬’

1910년 파리 캉봉에서 모자 매장 '샤넬 모드'로 사업 시작
'패션 신화' 코코 샤넬, 남성편력 이어가며 사업 확장
짧은 스커트·어깨끈 달린 핸드백, "자유로운 여성" 패션 선구자
1971년 샤넬 사망 후 '침체', 1983년 칼 라거펠트 발탁 '전환점'
'샤넬' '정체성' 살리고 디자인 '혁신', 브랜드 이미지에 화려함 더해
2019년 사망까지 '샤넬'·'펜디' 수석 디자이너로 '롱런'
'샤넬' 새 디자이너 '비르지니 비아르', 칼 라거펠트 '수제자'
2017년 매출 10조 9,379억 원, 아·태 지역 성장으로 전년 대비 11%↑
기사입력 : 2019-03-22 19:00:20 김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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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에 자유 준 패션 선구자 '코코 샤넬'

1910년 파리 캉봉에서 모자 매장 '샤넬 모드'가 영업을 시작한다.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 일명 '코코 샤넬'이 설립한 이 매장이 세계 최고 브랜드 '샤넬'의 시작점이다. 본명보다 뮤직홀 가수로 일할 때 얻은 별명인 '코코'로 불린 그녀는 빈 손으로 시작해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를 일군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후 수녀원에서 자란 '코코 샤넬'은 18세부터 일하던 봉제 회사를 그만두고 가수가 된다. 이후 연인의 투자를 받아 개업한 모자 매장이 성업하면서 의류까지 분야를 확장, 상류층 휴양지에 매장을 늘리며 승승장구 한다. 웨스트민스터 공작·디미트리 대공 등 상류 사회의 남성과 연애 편력을 이어가던 그녀는 '일이 우선'이라면서 평생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픽사베이 / 모나코 샤넬 매장

이런 성향은 그녀가 만들었던 옷 스타일에도 나타난다. 여성복은 코르셋으로 몸을 조여 곡선을 강조하고 보석으로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에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인 것이다. 직선적인 라인에 무릎을 덮는 심플한 검정 드레스는 쉽게 만들고 언제든 입을 수 있었다. 이후 어깨 끈 달린 핸드백을 만들어 여성의 양 손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들 패션은 제1·2차 세계 대전 간 노동 주체가 된 여성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코코 샤넬'은 사업 성공으로 4,000명의 직원을 고용한 기업가가 됐지만 1936년 프랑스 총파업이 발생하며 부침을 겪는다. 3년 뒤인 1939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작업장들을 모두 닫아버리고 15년 간 패션계를 떠난다. 이후 일흔 한 살이 돼서 다시 작업장을 연 '코코 샤넬'은 트위드 소재의 '샤넬 수트'와 '2.55 퀼팅백' 등 대표작을 연달아 선보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 '칼 라거펠트' 시대, '정체성' 살리고 다시 '톱 브랜드'로

 

▲출처=샤넬 홈페이지 / 2018 F/W 패션쇼


1971년 '코코 샤넬'의 사망으로 '샤넬' 브랜드도 침체기를 겪게 된다. 진부하다는 혹평을 들으며 내리막을 걷던 '샤넬'이 선택한 인물은 독일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였다. 1983년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된 그는 무려 37년 간 자리를 지키며 샤넬을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만들었다.

특히 샤넬의 스타일을 지켜내면서도 화려하고 대중적인 디자인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트위드 소재를 활용하고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이는 등 샤넬 고유의 정체성을 살려내면서 레이스와 색 등 다양한 요소들을 화려하게 사용해 '샤넬'의 디자인을 젊게 탈바꿈 시켰다.

그는 2019년 사망할 때까지 '샤넬' 뿐 아니라 '펜디'의 수석 디자이너로도 동시에 활동했다. '펜디'의 경우 1965년부터 무려 55년동안 장기 집권하며 엄청난 창작 능력을 과시했다. 또 직접 사진을 공부해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거나 영화 감독으로 단편 영화를 찍으며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 '세계 3대 명품' 명성 '굳건', 디자이너 교체로 '새 국면'
 

▲그래픽= 최동원 기자

샤넬은 루이비통·에르메스에 이어 3대 명품으로 꼽히면서 굳건한 명성을 갖게 됐다. 샤넬의 클래식 스타일인 플립백은 한 때 중고품이 구입 당시 가격보다 비싸지면서 '샤테크' 열풍을 일으키키도 했다. '코코 샤넬'의 디자인을 재해석하는 일에 능했던 '칼 라거펠트'는 2005년 샤넬백을 최초 디자인으로 되돌린 '2.55 퀼팅백' 제품을 선보이며 수요를 분산 시켰지만 샤넬의 굳건한 인기를 단편적으로 보여준 일이다.

'칼 라거펠트'가 2019년 초 갑자기 사망하면서 '샤넬'은 그의 수제자인 '비르지니 비아르'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했다. 그녀는 영화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칼 라거펠트'의 권유로 디자인을 시작해 30년 간 함께했다. '칼 라거펠트' 생전에도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 그녀가 '샤넬'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 108년만에 매출액 공개, 새 성장 동력 찾을까

'샤넬'은 지난해 6월 108년만에 2017년 매출을 공개해 화제가 됐다. 비상장 기업인 '샤넬'은 매출 공개 의무가 없어 그동안 매출과 이익률 등 재무구조를 공개하지 않았다. 공개된 연간 매출액은 96억 2,000만 달러(약 10조 9,379억 원)으로 전년 대비 11% 성장하며 탄탄한 브랜드 가치를 과시했다.

한편 이번 공개를 통해 지역별 매출 비중도 공개됐다. 유럽이 39억 달러(약 4조 4,343억 원)으로 가장 높았지만 아시아 시장이 37억 5,000만 달러(약 4조 2,637억 원)으로 이에 근접해 인기가 굳건했다. 명품 브랜드들이 아시아 시장으로 향하는 시점에서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브랜드 파워 강화를 위한 전환점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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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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