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기보다 광채’, 다이아몬드 세공 ‘혁명’
티파니는 1837년 미국 뉴욕에서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시작한 보석 전문 업체다. 문구와 팬시 용품을 파는 가게로 시작했지만 1851년 최고의 은 세공사 에드워드 C.무어가 사업체를 인수하면서 귀금속 분야에 진출한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해 광택·강도가 가장 높은 92.5% 비율로 ‘스털링 실버’를 재탄생시키며 은세공 부문 최고 메달을 차지했다. 1878년에는 파리 국제 디자인박람회 금메달을 수상해 유럽에서 이름을 떨쳤다.
티파니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건 같은 해 세공한 128.54 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였다. 일반적인 58면 커팅보다 훨씬 많은 82면 커팅을 하면서 원석 크기를 반 이상 줄였지만 광채를 높였다. ‘오드리 햅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홍보하며 목에 걸어 더 유명해진 보석이다. 크기보다는 광채를 살리는 방식을 택하면서 다이아몬드 세공 방법을 완전히 바꿨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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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최동원 기자 |
1886년에는 광채 중심 세공 철학을 살린 반지 디자인을 선보인다. 다이아몬드를 완전히 들어 올리는 발을 만들어 밴드와 다이아몬드를 분리했다. 빛이 다이아몬드의 하단까지 완전히 통과하도록 만들어 광채를 극대화 시켰다. 이런 방식은 ‘티파니 세팅’으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다이아몬드 세공의 표준으로 평가된다. ‘티파니블루’로 불리는 푸른색 박스에 결혼 반지를 담은 ‘티파니’의 이미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 사들인 ‘유럽 왕실 보석’, 신흥 상류층 ‘상징’
1887년 창업주인 ‘찰스 루이스 티파니’는 ‘티파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프랑스로 건너가 몰락한 프랑스 제2왕실의 보석을 사들였다. 왕실 보석의 3분의 1 가량을 사들여 티파니의 인장을 새겨 판매한 것이다. ‘외제니’ 왕후의 다이아몬드 브로치 등 유서 깊은 제품들이 포함돼 브랜드에 유럽 왕실의 이미지가 더해졌다. 이후 ‘티파니’의 이미지는 세련된 신흥 상류층을 위한 브랜드로 형성된다.
‘티파니’의 이런 이미지는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상류층에게 어필하면서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링컨’ 대통령은 취임식 때 티파니의 액세서리 세트를 부인에게 선물했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티파니 약혼 반지와 손목시계를 착용했다. 특히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애용한 ‘티파니’의 팔찌는 ‘재키 팔찌’라는 별명을 얻으며 높은 인기를 과시했다.
□ 세계 최고 디자이너, 보석·액세서리 ‘새역사’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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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티파니 홈페이지 / ‘바위 위에 앉은 새’로 재가공된 128.54 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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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일균 기자 / 홍콩 첵랍콕 공항 티파니 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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